보호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00Q] 근무 중

Double-0-Seven 2014. 3. 16. 13:27

 Q의 옷 아래로 뱀처럼, 찬 손이 슬금거리며 기어들어왔다.

정적으로 가득 찬 브랜치 안. 간간히 정적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자판소리와 웅웅거리는 기계음. 그리고 그 틈을 가로질러 온 본드는 능글맞게 웃으며 조용히 Q의 자리로 다가갔다. 분명 인기척이 느껴지긴 했을텐데 Q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않았다. 무시하는건 너무하지 않나. 살짝 기분이 상한 본드가 흠흠, 헛기침을 해도 아랑곳않고 타닥타닥 랩톱을 두드린다.

 "근무 중입니다."

 "난 근무 끝났는데."

 "'제가' 근무 중이잖아요."

단호하게 선을 긋는 Q의 어투에 본드는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들어 바빠진 Q의 기분을 최대한 배려하는 차원에서 영 스킨십을 하지 않은게 원인이 아닐까하며. 일부러 Q의 목덜미에 쪽 하는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자 지금까지 쉴새없이 움직이던 Q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추었다. 거기에 본드가 피식 웃자 Q는 본드가 입 맞춘 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근무 중이라며. 일 해야지, 응?"

본드가 만들어낸 소리는 Q의 귓전에 계속해서 울렸다. Q는 행여 그 낯부끄러운 소리가 브랜치에 울렸을까 초조해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Q에게는 충분히 심장이 덜컥만큼 큰 소리였다.

 "...하지마세요."

 "글쎄."

들릴 듯 말 듯 나즈막한 Q의 목소리에 본드는 지금 Q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무언가 더 기대하고 있을까. 어느쪽이든 귀여운건 마찬가지일테지만. 사실 본드는 Q가 이런 작은 스킨십에도 일일이 반응하는게 좋았다. 은근히 민감하다고 해야할까. 특히 침대 위에서는 더욱. 한참을 심호흡하고 자세를 가다듬는 Q를 보며 본드는 한번 더 미소지었다. 귀엽기는.

 "여기서 더 건드렸다간 울겠구만."

 "요원님이 저 우는거 보기 전에, 제가 M을 호출하는 방법도 있죠."

 "재미없게 나오네."

 "여기선 재미보다 일이 우선 아닙니까."

본드는 이와중에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는 Q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딱딱한 점이 가끔 매력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본드가 그렇게 가학적인 타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견고한 성은 무너트리는 재미가 있으니까.

본드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Q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Q는 이런 식으로 일을 방해받는게 싫었다. 여긴 자신의 브랜치고, 자신의 영역이며, 다른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이 안에 침범해서 제멋대로 구는 본드를 빨리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Q는 결국 잔소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임무 끝나셨으면 저 괴롭히지 마시고 얌전히 플랫에 가서..."

Q가 고개를 돌리자 본드는 기다렸다는 듯 Q의 턱을 붙잡고 진한 키스를 선물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흡,하고 굳어있던 Q는 본드를 밀어내려 했지만 쉴 틈을 주지않고 얽혀 들어오는 혀에 눈마저 질끈 감겨버렸다. 한참 일하던 것도 잊고 키스에 집중하던 Q는 윗옷 사이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본드의 손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 그만!"

 "쉿. 여기 브랜치 안이야, Q. 조용히 해야지."

 "누가 할 소릴...!"

 "그래, 그래. 이쯤 할테니까 진정하게."

 "...들어가서 쉬세요."

 "화내는 얼굴도 귀엽군. 내가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지."

 "진짜 그만하세요..."

본드는 저런 반응도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Q의 양 볼을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저녁에 보자고."

 "...네."





'Double-0-Se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Q] 발열  (0) 2014.07.02
[00Q] 블랙리스트  (0) 2014.03.21
[007] 썰 모음  (0) 2014.01.11
[Q00] 썰 모음(2)  (0) 2014.01.09
[00Q] 이유  (0) 2013.11.21

설정

트랙백

댓글

보호글

[007] 썰 모음

Double-0-Seven 2014. 1. 11. 23:5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00Q] 이유

Double-0-Seven 2013. 11. 21. 23:46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Q00] 썰 모음(1)

Double-0-Seven 2013. 11. 21. 21:33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00Q] 남은 자리

Double-0-Seven 2013. 11. 20. 23:4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00Q] 휘프노스

Double-0-Seven 2013. 11. 18. 01:18



 Q는 본부로 출근한지 4일만에 비로소 플랫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나흘동안 Q를 괴롭힌, 끝나지 않는 야근에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서 '방으로 가야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푹신한 침대에 발 뻗고 편해 누워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피곤해.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Q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꺼풀이 닫히자 마자 누군가가 Q를 아주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는데, 자신은 멀쩡하게 어딘가에 서 있었다. 땅을 밟고 있는 것 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닥에 손을 대 보았다. 바닥은 흐르는 액체인건지 강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의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물장구 치듯 허공에 튕기자 수없이 많은 동그란 방울들이 공중에 별처럼 흩뿌려졌다. 동시에 사방은 새카매졌고, 이제는 우주에 와 있는 듯 했다. 자리를 잡은 방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별처럼 반짝거리며 빛나지도 않았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Q는 방울들을 하나둘 손 안에 모았다. 의외로 찰흙처럼 말랑거리길래 한번 꾹꾹 뭉쳐보았더니 금새 한 덩어리가 되었다.

 - 좋아. 이걸로 뭘 하면 되는거지?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네가 잘 할 수 있는걸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말한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우주 안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Q 자신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 Q는 알고 있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공간이 현실에 존재할 리 없다는걸. 그러니 이건 꿈이 틀림없다고. 현실의 자신은 나흘의 야근에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으니 더더욱 꿈일 수 밖에 없었다.

 - 내가 잘 만드는건 이걸로 만들 수 없어.

이번에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첫번째 말과는 달리 대답을 기대하고 해본 혼잣말이었다. Q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꿈이야. 생각을 해. 네 마음대로. 뭐든지.' 생각으로 물체를 만들라니.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Q는 꿈 속에서, 머리속으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꿈이지만 Q가 쿼터마스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Q는 실현 불가능한 무기를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 영화에서나 보았던 레이저검이라든가, 외계인들이 쏘는 광선총이라든가. 하지만 꿈 속에서 만들 무기치고는 별로 독특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 뭐든 만들 수 있는데. 고작 광선총은 너무하지.

그렇다면?

 - 창조주가 되어볼까.

Q는 '인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꿈 속에서까지 직업에 구애받을 이유는 없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걸 해봐.' 해야하는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Q는 인간을 만들고 싶었다.

 - 어떤 모습이 좋을까? 유아? 청소년? 성인? 여성? 남성? 영국인? 아니면 다른 나라?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던 Q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작은 감탄사를 내뱉은 Q는 멈추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구체화 해나갔다.

 - 그 사람, 키가 어느정도였지? 나보다 조금 더 크지, 아마. 눈 색은? 밝은 파란색. 머리칼은 얼마나 길었지? 아니, 길다기보다는 짧은 편이지. 무슨 옷이 어울렸더라. 역시 정장. 그게 아니면 안되지. 어디보자. 주름도 좀 있고, 정장에 가리겠지만 어쨌든 근육질이었어.

거의 비슷한 형상이 만들어지자 Q는 다시 눈을 떴다.


 - Q, 일어나게.

 Q의 바로 눈 앞에 자신이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던 '인간'이 나타났다. 정장을 입은 인간은 파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세상에. 성공했잖아?

 - 무슨 소린가?

꿈 속에서 미처 이름까지는 불러보지 못한 자신의 창조물. Q의 파트너, 007, 제임스 본드.

 - 아.. 아닙니다. 꿈을 좀 꿨어요.

 - 잠꼬대 그만하고 일어나게. 전화도 안받고.

 - 요원님 전화까지 하셨어요?

 - 자네 핸드폰 열어봐. 부재중 몇통인가.

 - 깊게 자느라 못 들었나 보네요.


 Q는 본드의 차 안에서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본드의 말로는 하루를 꼬박 잤다고 하지만 여전히 피곤한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 Q를 흘깃 쳐다본 본드는 다시 시선을 차도에 고정했다.

 - 무슨 꿈을 꿨나?

 -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냥.. 뭘 좀 만들어봤어요.

 - 뭘?

 - 뭐든지요.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본드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하하.'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 자넨 꿈 속에서도 무기를 만들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

 - 처음엔 그러려고 했죠. 여기선 아직 만들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광선총이라든가.

 - 자네다워.

 - 그런데 재미 없더라고요. 만들어봐야 쓸데가 없으니까요. 거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이야기 도중 본부에 도착한 Q와 본드는 차에서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Q의 꿈에대한 대화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 그래서, 자넨 결국 뭘 만들었나?

 - 제가 앞으로 만들 무기를 쓸 사람이요. 사람을 만든 뒤에 무기를 쥐어주면 그걸 쓰겠죠.

 - 꽉막힌 발상이구만. 어떤 사람을 만들었지?

 - 그게, 결국 못 만들었습니다. 마침 깨버렸거든요.

마침내 브랜치에 도착한 Q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본드 역시 임무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Q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동안 왜 하필 그 때 깬건지 생각해보았다. 분명 깊이 잠들었을텐데 신기한 타이밍에 현실에서 눈이 떠진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어느순간 어렴풋이 해답이 떠올랐다.

 - 요원님, 들리세요?

 - 아직 임무 시작 전인데. 무슨 일이야?

 - 별건 아니고요, 제가 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본게 있는데요.

 - 그래? 한번 들어볼까.

 -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건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고들 하죠.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꿈에서도 못하게끔 절 그 때 깨워버린거 아닐까요.

 - 그럼 자네가 꿈에서 들은 목소리는 '신'인가?

 - 그럴지도요. 미신 같은걸 믿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나쁘진 않네요.

 - 다음에 또 똑같은 꿈을 꾸게되면 한번 더 해보게. 그럼 확실히 알 수 있겠지.

 - 글쎄요, 위험한 짓을 했는데 신께서 절 다시 초대해줄지 모르겠네요.

'Double-0-Se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Q00] 썰 모음(1)  (1) 2013.11.21
[00Q] 남은 자리  (0) 2013.11.20
[00Q] 짧은 병원썰  (0) 2013.11.09
[00Q] 장갑  (0) 2013.11.09
[00Q] 비  (0) 2013.11.05

설정

트랙백

댓글

보호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00Q] 장갑

Double-0-Seven 2013. 11. 9. 00:55

* 2013년 10월 트위터




 Q가 장갑을 본부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건 별생각 없이 밖으로 빼놓은 손가락이 얼어서 뻣뻣해진 느낌이 들 때쯤이었다.




Gloves

[스카이폴] 00Q :: 13 11 08




 올해 겨울 이래로 내리는 '첫눈'이 발단이었다.

한두 살 먹은 애는 아니지만 백발노인들도 설레는 게 흰 눈 아닌가. 들뜬 마음으로 퇴근하고 한껏 기대감에 차서 손으로 눈송이를 받는 것도 잠시. 붉게 얼어버린 손은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주머니에 갇혔다. 하필 이때 도착한 문자는 Q를 매우 짜증 나게 만들었다.

 - Q, Where r u?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자판을 치자니 추운 것은 둘째치고 난무하는 오타에 지웠다 썼다를 두세 번 반복하던 Q는 결국 답장하기를 그만두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은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한건지 작은 소리로 변명을 중얼거렸다.

 "굳이 할 이유는 없으니까."


 눈이 내리는 길거리는 평소보다 배로 조용해서 낯선 기분이 들었다. 분명 지나가는 차들과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한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고요한 기분이 드는건지, Q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소음들 보다 '들리지도 않는 눈 내리는 소리'가 더욱 큰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눈의 소리는 마치 귀마개처럼 다른 소리들을 막아버렸다. 그러던 중 그 고요함 사이의 어디에선가 익숙한 소리가 하나 들렸다.

 "답장정도는 해줄 수 있잖나."


 어떻게 찾아온거지. 잠시 의문을 품던 Q는 이런 생각은 해 봐야 별 소득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본드에게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손이 이 꼴이라서요. 굳이 답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고. 혹시 중요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본드는 Q의 손을 보더니 혀를 쯧쯧 차며 인상을 썼다.

 "나야말로 자네한테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지. 웬일로 일찍 퇴근했다기에."

 "저라고 꼭 정시퇴근 해야하나요 뭐. 애당초 정시퇴근이라는게 없지만."

 "그래서, 일찍 나온 사유가?"

 "몇 년만에 눈 좀 즐겨보려구요."

 "그리 말하니 M이 보내주던가?"

 "아뇨. 꾀병 좀 부렸죠."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 본드를 앞에 둔 Q는 덤덤하게 본드를 바라봤다.

 "뭐.. 그럼 큰 용건은 없으신거네요?"

 "그렇지. 자네 손 좀 줘보게."

 "손이요?"

Q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손을 내밀자 본드는 기다렸다는 듯 덥썩 그 손을 잡아 자신의 손에 포갰다. 뭐하는 건지 황당한 눈빛을 하던 Q는 찬 손이 녹아가는 따스한 느낌에 아주 잠깐만, 본드에게 손을 맡기기로 했다.

 "따듯하네요."

 "난 열이 많은 편이거든."

 "겨울엔 좋으시겠어요."

 "유용하지.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Q의 손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움직이자 둘은 발걸음을 서둘러 플랫으로 들어왔다. 어쨌든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무언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Q는 플랫에 들어오자마자 물을 끓였다. 몇 분 뒤, 본드는 Q 나름의 '성의'인 커피를 한 모금 미심쩍게 마시고는 곧장 인상을 찡그렸다.

 "쓰구만."

 "원래 달게 안 마셔서요."

 "난 술이 좋은데."

 "전 커피가 좋아요."

 "보통은 손님 입맛에 맞추지."

 "요원님은 손님으로 안 치죠."

한참 커피를 홀짝이던 본드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있던 장갑을 꺼내 Q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주니까 받기는 한 Q는 본드가 준 것의 정체를 확인하곤 커피 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이거.. 제 장갑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왜 이제서야 저한테 주시는 건지 알고 싶네요."

본드는 능청스레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삼켰다.

 "덕분에 손도 잡아보고 좋지 않나?"

 "아주 계획적이시네요."

 "그런 소리 자주 듣네."

 "칭찬 아닙니다."

 "나도 알아. 어쨌든 나쁘진 않았잖나?"

싱글싱글 웃는 본드를 지긋이 보던 Q도 커피를 한번 홀짝이고 '뭐, 그렇긴 했죠.'라고 대답하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브랜치로 들어오는 Q는 맨손이었다. 그 얼어붙은 손을 본 본드는 한숨을 푹 쉬며 Q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또 까먹고 왔나? 젊어서 벌써 그러면 안되지."

Q는 본드의 손을 꼬옥 잡으며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겨울동안만 신세 좀 지려고요."

'Double-0-Se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Q] 휘프노스  (0) 2013.11.18
[00Q] 짧은 병원썰  (0) 2013.11.09
[00Q] 비  (0) 2013.11.05
[00Q] 오렌지 파우더  (0) 2013.05.18
[00Q] Save me  (0) 2012.12.12

설정

트랙백

댓글

[00Q] 비

Double-0-Seven 2013. 11. 5. 00:01

 "좋아합니다."

 본드는 Q의 한마디에 들어있는 감정이 확실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동경을 사랑으로 착각한건지, 아니면 한순간 충동일 뿐인지. 물론 두 쪽 다 달갑지는 않았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재능있는 젊은이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이 그 정도로 매력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쨌건, 그런 이유에서 정중히 거절했건만 이 어린 쿼터마스터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본드는 은근히 자신을 피해 다니는 Q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Q가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평소처럼 잔소리나 해주면 좋을 것을. 그 날 이후로 Q는 본드를 피하고, 본드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Q를 재밌게 지켜보며 몇 주가 흘렀다.




Rain

[스카이폴] 공공큐 :: 13 11 04




 하루는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다. 그 날 본드는 플랫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우연찮게도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한 Q와 마주쳤다. Q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재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보다 먼저 본드의 짓궂은 장난끼가 동해버렸다. Q의 앞을 막아선 정장의 아저씨가 능구렁이처럼 씨익 웃었다.

 "집에 안가고 뭐하나, 비까지 맞아가면서?"

 "전 원래 비 맞는거 좋아합니다. 비켜주십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어설프게 내뱉는 거짓말이 눈에 빤히 보이는 탓에 본드는 Q의 앞에서 보란듯이 큭 하고 웃어버렸다.

 "진짭니다!"

 "자넨 되도록 거짓말은 하지 말게. 너무 눈에 보이잖나.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무슨 상관입니까? 비키라니까요!"

자신을 피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왔다갔다 거리는 Q를 따라 걸으며 본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알기론 이쪽은 자네 플랫으로 가는 길이 아닐텐데."

 "갈 데가 있으니까요."

 "또 거짓말이군. 어디보자, 열쇠라도 잃어버렸나?"

순간 Q가 어떻게 그걸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본드는 또 한번 웃어버렸다.

 "웃지마십쇼. 전 심각하니까."

 "어디로 가려고?"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일단 호텔로 가려고요."

 "우리집은 어떤,"

 "싫습니다."

본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튀어나온, 상당히 단호한 거절이었다. 지나치게 빠른 답변에 본드는 잠시 어버버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자신을 지나쳐가는 Q를 다시 붙잡았다.

 "Q."

 "놔요!"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야!"

 "죽을 때까지요!!"

이를 악문 Q의 외침이 어딘가에 닿은건지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가. 가자고. 감기걸려. 그 다음에 투정이든 욕이든 들어줄테니까. 사람 말 좀 듣게."

얼마동안이나 빗속에 서있던건지 서서히 파랗게 질려가는 Q의 입술을 본 본드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혀를 차곤 Q를 잡아끌며 플랫으로 향했다.



* * *



 반강제로 Q를 욕실에 밀어 넣은 본드는 한숨 돌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Q에게 줄 마실 것을 끓였다. 이거라면 분명 싫어하겠지만, 지금의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음료였다. 그러던 와중에 어디선가 훈훈한 기운이 새어나왔다. 은은한 물 내음. 이제 나오나 보군. 본드는 적당히 데워진 마실 것을 머그에 따랐다.



* * *



 Q는 욕실 문 앞에 놓인 옷을 입어보았다. 거울에 비친 헐렁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곤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리기를,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건지."



* * *



 "자, 마시게."

 머그에 담긴 우유를 빤히 보던 Q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도로 머그를 내밀었다.

 "커피로 주시죠."

 "애한테는 우유가 나아."

 "제가 애면 요원님은 청소년이게요?"

 "겨우 차인 것 때문에 며칠도 아니고 몇 주 동안 사람 피해 다니는 유치한 짓은 애도 안 하는 짓이지."

반박할 도리가 없는지 Q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드는 여전히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Q를 보고선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뭐 좋아하는 거 없나?"

 "좋아하는 거라뇨?"

 "저녁 말이야. 끼니는 제때 맞춰야 돼."

 "안 가립니다."

 "맘에 드는군."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시작한 본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Q가 입을 열었다.

 "요리 잘하시네요."

 "난 뭐든 잘하지. 요리도 임무도 작업도."

 "무기 반납도."

 "말에 가시가 돋쳤어."

 "늘 그랬습니다."

 "저번엔 아니었지."

 "손이나 조심하시죠."

 "한마디도 안 지는군. 오랜만에 말싸움하니까 좋은데."

 "입으로 요리하세요?"

 "다 됐어."

 Q는 다소 불편해 보였지만 어찌 됐든 둘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식기가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와 함께 본드는 Q에게 넌지시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Q는 젓가락질을 하며 시큰둥하게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번 대답은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텐데, 본드는 괜히 Q를 한번 떠보았다. Q에게는 시비 같았겠지만.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게. 솔직해지라니까."

 "100%. 진심입니다."

이후로 한마디도 없이 '차려져 있으니 먹는다'는 식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는 Q를 빤히 보다 자신도 한두 입 우물거리던 본드는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날 왜 피하지?"

 "밥 좀 먹읍시다, 네?"

 "미움을 받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받자고. 내가 자네 고백 거절한 게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잖아?"

입속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킨 Q는 수저를 내려놓고 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말을 시작했다.

 "저는 요원님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제대로 본드의 눈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왜 요원님을 피하냐구요? 보이면 붙잡아서 매달리고 싶어요. 안겨서 계속 매달리고 싶어요. 분명 거절하셨죠. 그런데 제가 포기가 안 돼요. 제가요. 그래서 피하는 겁니다. 미움  받기 싫은 쪽은 저라고요. 저 싫다는 사람한테 좋아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강요하기는 싫습니다. 저 싫다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비참한 짓은 더더욱 하기 싫습니다. 그러니까 저 좀 내버려두세요. 제발."

 말을 끝마친 Q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현관으로 걸어갔다.

"우산 빌려 가겠습니다. 내일 옷이랑 같이 돌려 드릴 테니까."

서둘러 나가려는 Q를 현관에서 붙잡은 본드는 그대로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당장 놓으라며 버둥대는 Q를 더욱 세게 안은 본드는 재밌다는 듯이 연신 웃어댔다.


 품 안의 몸부림이 잠잠해지자 본드는 그제야 팔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고 씩씩대는 Q를 진정시키듯 등을 토닥였다.

 "Q, 진정하고 내 얘기 좀 들어줘. 난 자네가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니야. 자네 마음이 단순히 충동적인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거절했던 거지."

 "..아주 제멋대로시네요."

 "그래, 자네 마음을 내 멋대로 판단해서 미안하네."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본드의 말에는 한 치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Q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본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 *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떤가."

 "요원님이 괜찮으시다면요."

 "난 자네 생각이 궁금한데."

 "좋아요."

 "자네 나한테 푹 빠졌군?"

 "엄청요."

 "솔직해서 좋아."

'Double-0-Se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Q] 짧은 병원썰  (0) 2013.11.09
[00Q] 장갑  (0) 2013.11.09
[00Q] 오렌지 파우더  (0) 2013.05.18
[00Q] Save me  (0) 2012.12.12
[Q00Q] Situation 1, 2  (0) 2012.12.08

설정

트랙백

댓글

[00Q] 오렌지 파우더

Double-0-Seven 2013. 5. 18. 00:01






 콜록,

모니터를 주시하던 Q의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잔잔하게 출렁거렸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기침 소리 정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콜록, 콜록, 연이은 열댓 번의 기침과 앓는 소리는 Q브랜치 내에서 바삐 움직이던 뭇 직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Orange Powder

- 13.05.17 -





직원들이 흘끗거리며 Q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 중 한 여직원이 서랍을 뒤적거리다 무언가 한 움큼 손에 쥐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Q에게 건네주었다. 작은 사탕 몇 알이었다.

- 천천히 녹여 먹어요. 기침이 좀 덜할 거예요.

- 미안해요, 내가.. 많이 시끄러웠나요?

- 오, 아니에요. 다들 걱정하고 있거든요.

-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Q의 목은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사탕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일시적인 방법이기는 해도, 기침이 많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아예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본드의 무전이 올 때까지도.

 때마침 마지막 사탕을 우물거리던 참이었다. Q는 무전 도중에도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억지로 기침을 참아냈다.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요원이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결국, 참았던 기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숨이 넘어갈 듯 콜록거렸다. 그 소리에 Q브랜치 직원들 몇몇이 당황하다 허둥지둥 따뜻한 물을 떠다 주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안정을 취하는 Q의 귓가에 평온한 본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네 괜찮나?

- 네, 물 마시니까 좀 낫네요. 계속 가시죠.

- 그러지.

그의 무심한 태도에 Q는 약간 실망한 듯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한 번만 더 물어보시지. 그렇게 괜찮지는 않은데. 빈말이라도 잠깐 쉬라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 * *



 Q는 퇴근하기 전까지 계속 뚱해 있었다. 기침 때문에 목이 부어서 신체적인 피로로 저기압인 것도 있었지만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다.

퇴근 직전, 본드가 무사 귀환 소식을 알리며 Q브랜치 안으로 들어왔다. 막 머그잔과 랩탑을 챙기던 Q는 본드가 서 있는 쪽을 흘끗 보고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Q가 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본드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비키라는 듯 쏘아보는 Q에게 본드가 다짜고짜 들이민 것은 작은 상자였다.

- 뭡니까. 이 상자는.

- 감기에 좋다더군.

- 그러니까, 뭐냐고 물었잖아요.

- 자네는 그 나이 먹고 글자도 못 읽나?

- 'Orange Powder'. 저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닙니다.

- 기분 좀 풀어. 말린 귤껍질 가루라고 하더군. 뜨거운 물에 태워 마시면 돼.

- 아, 예..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자를 받고 멍하니 서 있던 Q는 뒤늦게 잠시나마. 아니, 사실은 그다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본드에게 실망했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몰려드는 창피함과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 인사를 중얼거리기도 전에 본드의 입이 Q의 뺨에 닿았다 떨어졌다.

- 자기 전에 꼭 마시고.

분명 기침뿐인 감기였는데. 뺨에서부터 주황빛으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 * *



- 형, 그냥 감기야. 좀 쉬면 나을 건데.. 약? 됐어. 괜찮다니까? 플랫 앞이야. 끊을게.

 Q는 플랫에 들어오자마자 어딘가에 넣어두었던 투명한 유리 찻주전자를 꺼내왔다. 형이 준거였지 아마. Q 자신은 커피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다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깊숙이 넣어둔 것이었다. 덕분에 하얀 먼지가 뽀얗게 쌓여서 물로 닦아내야 했다. 물방울 맺힌 유리주전자가 반짝거렸다.


 조용한 가운데 은은한 주황색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내고 있다. Q의 플랫 안은 어느새 귤 향기로 가득 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오렌지색으로 물든 것처럼. Q는 차와 함께 먹을 작은 케이크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고 자신은 얇은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 가만히 끓는 물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진한 색이 나올까? 시간은 오후 11시를 넘어섰다.



* * *



 본드는 담담한 척 했지만, 사실은 무전을 통해서 전해진 Q의 상태가 걱정됐다. 심한 기침에 혹시 목이라도 상하면 어쩌나, 더 심해져서 면역이 약해지면, 다른 병이라도 같이 온다면? 물론 자신도 과한, 괜한 걱정이라고 도리질을 했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입에 달고 사는 커피 대신 마시라는 의미로 오렌지 파우더를 전해주긴 했지만 역시 걱정이 가시지는 않았다. 결국, 자신의 플랫이 아닌 Q의 플랫으로 발길을 돌렸다.


 노크를 해도, 초인종을 한번 눌러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자는 건가? 그럼 깨우지 말아야겠군. 뒤로 돌아서려는 순간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틈새로 Q의 부스스한 머리칼이 삐져나왔다. 막 자다 일어난 모습이 본드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Q가 안경 아래로 잠 덜 깬 눈을 비비며 어쩐 일이냐고 물어왔다.

- 걱정돼서 와봤는데, 아무래도 자는 걸 깨운 것 같군.

- 아. 아니에요. 차 끓이다 깜빡 잠들었어요.

차? 본드는 진심으로 우러나는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이렇게 말을 잘 들을 줄이야. 착한 아이라고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오신 김에 요원님도 차 한잔 하고 가시는 건 어때요.

- 좋지.


 본드가 플랫 안으로 들어섰을 때까지도 여전히 오렌지 향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분 좋은 향기에 본드는 Q를 향해 빙긋 웃었다. Q는 작은 케이크 조각을 하나 더 꺼내 본드 앞에 내려놓으며 역시 웃음으로 답했다.

- 향이 좋더라고요.

-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 괜찮죠?

- 상상 이상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마저 달콤한 주황색 솜사탕 같았다. Q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고 한번 홀짝였다. 과하게 달지 않고 약간은 새콤하면서도 끝 맛이 기분 좋게 씁쓰레했다. 생크림 얹은 케이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본드는 케이크를 우물거리는 Q를 보며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본래 술 체질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케이크 또한 영 입에 맞지 않았지만, 입가심할 디저트는 자신 앞의 쿼터마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늦은 시간, Q와 본드가 함께 있는 방 외의 모든 불은 꺼져있고. 그 방의 불마저도 환한 전등이 아닌 은은한 보조 등으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드라마틱하게도, Q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이 본드를 더욱 자극했다. 더욱 클리셰적이게, 본드는 Q의 입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 자넨 애가 아닐 텐데. 그럼 이건 일부러 묻힌 건가?

- 놀리는 것 좀 그만두시죠. ...웃지도 마시고요.

- 화내는 거 보니까 다 나은 것 같은데.

- 아뇨, 아직 감기끼,가..

본드는 천천히 Q에게 다가갔다. 은은한 불빛, 향긋한 오렌지 향. 분위기에 휩쓸린 걸까, Q는 가만히 본드를 바라보다 순순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어느새 허리에 올려진 본드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Q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혀가 감겨오며 키스는 조금 더 진해졌다. 입안 가득 몽롱한 오렌지 색. 본드의 손이 Q의 셔츠 단추를 풀어 내리고 가슴께를 쓸었다.

- 요원님.. 감기, 옮..을지도.. 아니, 옮아도, ...전 몰라요.

- 까짓 거 가져가지.

본드의 손이 슬금슬금 아래를 향해가자 Q는 그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열로 붉어진 Q의 입술 사이로 민망한 소리가 새나올 때쯤,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렸다.





'Double-0-Se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Q] 장갑  (0) 2013.11.09
[00Q] 비  (0) 2013.11.05
[00Q] Save me  (0) 2012.12.12
[Q00Q] Situation 1, 2  (0) 2012.12.08
[00Q] 안경  (0) 2012.12.07

설정

트랙백

댓글

보호글

[00Q] Save me

Double-0-Seven 2012. 12. 12. 00:2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보호글

[00Q] 안경

Double-0-Seven 2012. 12. 7. 22:2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