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비

Double-0-Seven 2013. 11. 5. 00:01

 "좋아합니다."

 본드는 Q의 한마디에 들어있는 감정이 확실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동경을 사랑으로 착각한건지, 아니면 한순간 충동일 뿐인지. 물론 두 쪽 다 달갑지는 않았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재능있는 젊은이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이 그 정도로 매력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쨌건, 그런 이유에서 정중히 거절했건만 이 어린 쿼터마스터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본드는 은근히 자신을 피해 다니는 Q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Q가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평소처럼 잔소리나 해주면 좋을 것을. 그 날 이후로 Q는 본드를 피하고, 본드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Q를 재밌게 지켜보며 몇 주가 흘렀다.




Rain

[스카이폴] 공공큐 :: 13 11 04




 하루는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다. 그 날 본드는 플랫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우연찮게도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한 Q와 마주쳤다. Q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재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보다 먼저 본드의 짓궂은 장난끼가 동해버렸다. Q의 앞을 막아선 정장의 아저씨가 능구렁이처럼 씨익 웃었다.

 "집에 안가고 뭐하나, 비까지 맞아가면서?"

 "전 원래 비 맞는거 좋아합니다. 비켜주십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어설프게 내뱉는 거짓말이 눈에 빤히 보이는 탓에 본드는 Q의 앞에서 보란듯이 큭 하고 웃어버렸다.

 "진짭니다!"

 "자넨 되도록 거짓말은 하지 말게. 너무 눈에 보이잖나.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무슨 상관입니까? 비키라니까요!"

자신을 피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왔다갔다 거리는 Q를 따라 걸으며 본드는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알기론 이쪽은 자네 플랫으로 가는 길이 아닐텐데."

 "갈 데가 있으니까요."

 "또 거짓말이군. 어디보자, 열쇠라도 잃어버렸나?"

순간 Q가 어떻게 그걸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본드는 또 한번 웃어버렸다.

 "웃지마십쇼. 전 심각하니까."

 "어디로 가려고?"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일단 호텔로 가려고요."

 "우리집은 어떤,"

 "싫습니다."

본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튀어나온, 상당히 단호한 거절이었다. 지나치게 빠른 답변에 본드는 잠시 어버버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자신을 지나쳐가는 Q를 다시 붙잡았다.

 "Q."

 "놔요!"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야!"

 "죽을 때까지요!!"

이를 악문 Q의 외침이 어딘가에 닿은건지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가. 가자고. 감기걸려. 그 다음에 투정이든 욕이든 들어줄테니까. 사람 말 좀 듣게."

얼마동안이나 빗속에 서있던건지 서서히 파랗게 질려가는 Q의 입술을 본 본드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혀를 차곤 Q를 잡아끌며 플랫으로 향했다.



* * *



 반강제로 Q를 욕실에 밀어 넣은 본드는 한숨 돌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Q에게 줄 마실 것을 끓였다. 이거라면 분명 싫어하겠지만, 지금의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음료였다. 그러던 와중에 어디선가 훈훈한 기운이 새어나왔다. 은은한 물 내음. 이제 나오나 보군. 본드는 적당히 데워진 마실 것을 머그에 따랐다.



* * *



 Q는 욕실 문 앞에 놓인 옷을 입어보았다. 거울에 비친 헐렁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곤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리기를,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건지."



* * *



 "자, 마시게."

 머그에 담긴 우유를 빤히 보던 Q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도로 머그를 내밀었다.

 "커피로 주시죠."

 "애한테는 우유가 나아."

 "제가 애면 요원님은 청소년이게요?"

 "겨우 차인 것 때문에 며칠도 아니고 몇 주 동안 사람 피해 다니는 유치한 짓은 애도 안 하는 짓이지."

반박할 도리가 없는지 Q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드는 여전히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Q를 보고선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뭐 좋아하는 거 없나?"

 "좋아하는 거라뇨?"

 "저녁 말이야. 끼니는 제때 맞춰야 돼."

 "안 가립니다."

 "맘에 드는군."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시작한 본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Q가 입을 열었다.

 "요리 잘하시네요."

 "난 뭐든 잘하지. 요리도 임무도 작업도."

 "무기 반납도."

 "말에 가시가 돋쳤어."

 "늘 그랬습니다."

 "저번엔 아니었지."

 "손이나 조심하시죠."

 "한마디도 안 지는군. 오랜만에 말싸움하니까 좋은데."

 "입으로 요리하세요?"

 "다 됐어."

 Q는 다소 불편해 보였지만 어찌 됐든 둘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식기가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와 함께 본드는 Q에게 넌지시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Q는 젓가락질을 하며 시큰둥하게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번 대답은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텐데, 본드는 괜히 Q를 한번 떠보았다. Q에게는 시비 같았겠지만.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게. 솔직해지라니까."

 "100%. 진심입니다."

이후로 한마디도 없이 '차려져 있으니 먹는다'는 식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는 Q를 빤히 보다 자신도 한두 입 우물거리던 본드는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날 왜 피하지?"

 "밥 좀 먹읍시다, 네?"

 "미움을 받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받자고. 내가 자네 고백 거절한 게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잖아?"

입속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킨 Q는 수저를 내려놓고 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말을 시작했다.

 "저는 요원님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제대로 본드의 눈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왜 요원님을 피하냐구요? 보이면 붙잡아서 매달리고 싶어요. 안겨서 계속 매달리고 싶어요. 분명 거절하셨죠. 그런데 제가 포기가 안 돼요. 제가요. 그래서 피하는 겁니다. 미움  받기 싫은 쪽은 저라고요. 저 싫다는 사람한테 좋아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강요하기는 싫습니다. 저 싫다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비참한 짓은 더더욱 하기 싫습니다. 그러니까 저 좀 내버려두세요. 제발."

 말을 끝마친 Q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현관으로 걸어갔다.

"우산 빌려 가겠습니다. 내일 옷이랑 같이 돌려 드릴 테니까."

서둘러 나가려는 Q를 현관에서 붙잡은 본드는 그대로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당장 놓으라며 버둥대는 Q를 더욱 세게 안은 본드는 재밌다는 듯이 연신 웃어댔다.


 품 안의 몸부림이 잠잠해지자 본드는 그제야 팔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고 씩씩대는 Q를 진정시키듯 등을 토닥였다.

 "Q, 진정하고 내 얘기 좀 들어줘. 난 자네가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니야. 자네 마음이 단순히 충동적인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거절했던 거지."

 "..아주 제멋대로시네요."

 "그래, 자네 마음을 내 멋대로 판단해서 미안하네."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본드의 말에는 한 치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Q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본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 *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떤가."

 "요원님이 괜찮으시다면요."

 "난 자네 생각이 궁금한데."

 "좋아요."

 "자네 나한테 푹 빠졌군?"

 "엄청요."

 "솔직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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