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수집

Double-0-Seven 2015. 5. 3. 22:19

 "저거 보세요, 더블오세븐."

 브랜치 직원이 속닥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곳을 본 007은 허허, 웃고 말았다. Q가 올해 몇 살이더라.

 "그래서, 저거 이름이 뭐라고?"

 "'커밋'입니다."


수집 (To.치카)

- 2015.04.26 -



 Q가 틈틈이 개구리('커밋')를 사 모으기 시작한건 2주 전부터다. 퇴근 후 플랫으로 돌아가 TV를 튼 Q는 어떤 토크쇼를 보게됐다. 웬 팔다리 기다란 개구리가 소파에 앉아서, 그것도 다리까지 꼬고, 사회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느 토크쇼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뤄진 쇼였지만 Q는 별 생각 없이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봤다. 그게 다였다.

며칠 뒤, Q는 항상 다니는 출근길의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갔다. 지나가려다 멈춰섰다. 진열대 중앙에서 약간 왼쪽편에 낯설지 않은 인형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본 말하는 개구리 말이다. 시간은 넉넉했고 Q의 무의식은 당장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외쳤다.

 "저,"

 "어서오세요, 손님!"

 "저기 놓인 개구리 인형.. 그러니까 이름이.."

 "'커밋'이요? 요즘 애어른 할거없이 인기예요."

Q는 망설임 없이 인형을 샀다. 가게 상표가 찍힌 작은 쇼핑가방을 들고 당당하게 브랜치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랩탑가방 정도만 들고다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쇼핑백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무도 안에 든게 무어냐고 묻지는 못했다. 묻기도 전에 초록색 개구리는 Q의 책상 위, 랩탑 옆에 앉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술렁이는 와중에 어느 용기있는 직원 하나가 Q에게 다가갔다.

 "와, 인형 귀엽네요. 선물 받으셨어요? 혹시 생일.."

 "생일 아닙니다. 제가 산거고."

내가. 샀다. Q가 인형을 샀고,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삽시간에 본부 전체로 퍼졌다. 장기 임무 때문에 멀리 나간 007에게만 빼고.


 어느날엔 쉬는 시간에 잠시 인터넷을 보던 중 팝업창으로 광고가 떴다. 그게 하필 그 개구리 관련 상품이었던 것이다. Q는 심드렁하게 '저번에 그 인형이네'하고 하나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쿨하게 결제를 했다. 이걸로 그쳤다면 더이상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A요원을 백업하던 중 스쳐지나간 가정집에 놓인 머그가 있었다. 흰색 바탕에 자그마한 개구리 얼굴과 까맣고 굵은 폰트로 'KERMIT'이 프린팅 되어있는 머그. 이건 며칠 뒤 Q의 책상 위에 놓였다. B요원이 타겟을 쫓는 화면에 잠시 나온 어린아이의 초록색 열쇠고리. C요원이 변장하고 잠입했던 백화점의 여성고객이 들고있던 파우치. 브랜치 여직원들이 Q의 개구리 사랑에 대한 수다를 떨다 나온 엽서와 손바닥보다도 자그마한 전시용 피규어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Q의 눈과 귀에 들어가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책상 위에 놓였다. 이에 MI6 직원들은 Q의 수준급 서치 능력과 놀라운 눈썰미 그리고 행동력에 새삼 감탄했다.


 "Q가, 인형을요?"

 "관련 상품들을 모으고 있더라고요."

 "그거 참.. 놀랍군요. 어릴 때도 장난감 같은거엔 별 흥미 없던 앤데."

 놀랍다는 말과 달리 마이크로프트는 평온한 얼굴로 홍차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007이 의아한 표정으로 별로 놀란 것 같지 않다고 말하자 마이크로프트는 웃으며 뜻밖이긴 하지만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답했다. 유전적인게 아닌가 싶다며. 그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집안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뭔가에 심하게 꽂히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Q의 둘째형만 해도 (유명하신 셜록 홈즈 말이다) 사건 하나에 완전히 몰두하면 다른 얘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던가. Q는 그정도로 중증은 아니니 오히려 다행이라던가. 그리고 마이크로프트는 아마도 얼마 있으면 질릴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질렸어요."

 거의 한달째 되는 때였다. 개구리를 모으기 시작한 시점부터 말이다.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어. 그래서, 그 많던 개구리들은 누가 다 데려갔나?"

 "몇 직원들이랑 주변에 아는 사람들 나눠줬어요. 그러고도 남은건 고아원에 기부했고."

이제 한동안은 잠잠하려나. 007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본인 전용 머그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는 Q를 내려다봤다. 거의 서른이지 아마. 그런 나이 치고는 썩 귀여운 수집이었어. 007은 씩 웃으며 Q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뭡니까, 갑자기. 불쾌하다는 얼굴로 미간에 주름을 잡은 Q가 007을 올려다봤다. 깜찍해서 그래. 바로 질색한 Q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아쉽지 않아?"

 "전혀요. 요원님이 아쉬우신건 아니고요?"

 "사실, 맞아. 그래. 이번엔 다른걸 모아보는건 어때?"

007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Q의 책상 위에 올렸다. 기계 장치의 부속품 같은 금속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낭 쇳조각이라고 생각할 이 금속을, Q는 단박에 무엇인지 알아챘다. 얼굴을 싹 굳힌 Q를 보자 007은 괜히 시선을 피하고 턱을 긁적였다.

 "와, 미치겠네. 이걸 지금 자랑이라고 들고와요?"

 "기념으로라도 모아두면 볼 때마다 생각나고 좋잖아."

 "그거야말로 참 귀여운 생각이네요. 진짜 이럴거예요? 단 한번을 멀쩡하게 못 들고와요? 볼 때마다 생각나면 홧병으로 죽을걸요?"

 "좋게 생각하자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면서 자네 실력도 느는거지. 안그래?"

 "퍽이나."

 Q는 조각을 서랍에 던져넣었다. 이후 그 조각에 날짜와 번호를 적은 태그를 붙인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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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트위터 스파이 전력(1) (미완)

Double-0-Seven 2015. 3. 9. 23:48

 "이렇게 쥐는거야, Q."

 Q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는 수 십 년, 수 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류의 완벽한 실내를 사랑했다. 밖으로 나가 뛰고 구르며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질색이었다. 이것은 그의 집안 특성이기도 했다. 두 명의 형들 또한 몸을 쓰는 것보다는 머리 쓰는 일을 선호했다. Q는 큰형의 몸매가 완벽하지 못한건 다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운동을 하라고 이야기해줘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하지 않는 운동을 권하려니 양심에 찔려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굳이 007에게 운동을 배우려던 것은 아니었다. 몸무게가 체중 미달이었으면 미달이지 과체중은 겪어본 적이 없는 Q는 여태 자신의 체형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해가 지날수록 자신의 몸에도 점점 살이 붙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큰형을 떠올리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그 말은 고스란히 임무 중이던 007의 귀에 들어갔다.


 007은 예전부터 Q에게 사격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아도 좀체 시원한 대답은 해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007은 복귀 후 바로 Q를 사격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총을 잡는 법부터 올바른 자세와 조준법 등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의욕을 보이던 Q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지쳐버렸다. 평소에 총은커녕 과일 깎는 칼도 쥐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맘대로 되지도 않는데 현직 요원이 총을 티스푼 다루듯 쉽게 이야기하는걸 듣고 있자니 얄밉고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그만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조금 쏴봤으니까 된거 아닙니까."

 "겨우 표적 하나 쏴놓고?"

필사적으로 총을 쥐여주려는 007과 몇 분을 말다툼 및 가벼운 몸싸움으로 실랑이를 하던 Q는 결국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사격이 아니라도 되잖습니까. 그냥 운동 좀 하고 싶었던 건데. 사격 말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같은 것도 있잖아요. 가볍고 쉬운거. 굳이 도구를 쓰게 만들고 싶으신거면 줄넘기라든지."

 "자네 체력으로는 그것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나?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가 알기로 자네 기본 체력이.."

 "됐습니다. 체력부족인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거랑은 별개로, 저는 이런 전문적인 체육 활동을 바란게 아니란 말입니다. 애당초 본부에만 박혀있을 저한테 사격을 가르치려는 이유가 뭡니까, 대체? 쓸 일도 없을 텐데."

 "쓸 일이 왜 없나? 혹시 누가 본부에 쳐들어오면 어쩌려고."

 "그걸 막는게 요원님 역할이죠."

 "혹시나 말이지, 혹시나.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는 거야, Q. 자넨 유독 활동적인 부분을 나한테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 멀린은.."

007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Q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고 007은 급하게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자'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싸늘하게 가라앉아버렸다. 입을 꾹 다문 Q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총을 들고 007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요원님이. 멀린을. 어떻게 아는 겁니까."

제아무리 살인면허를 가진 요원이라도 총구를 머리에 갖다 대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한다. 자연스레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린 007이 어색하게 웃었다. '멀린? 내가 멀린이라는 말을 했나?'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물론 007이 총에 맞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홧김에 총을 집어 들기는 했으나 단순 위협일 뿐이라는 것을 007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순순히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은 Q가 화를 내는 것이 007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답 하십쇼."

 "글쎄. 나 말고 내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Q?"

마이크로프트. Q가 나직이 욕을 뱉었다. Q의 '운동이 필요한' 큰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몇 년 전까지 기사단에 속해있었다. 기사단이란 어떤 단체를 Q가 제멋대로 부르는, 일종의 별칭이다. 그들의 원 명칭은 '킹스맨'이라고 한다. 기사단이나 킹스맨이나. 어차피 유치한 이름들이라고, Q는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를 어떻게 구슬린겁니까."

 "구슬리다니. 알아낸거지. 그리고 자넨 형님께 말버릇이 그게 뭔가."

 "남의 가정사까지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궁금한건 요원님이 어디까지 알고있냐는 겁니다."

 "자네가 멀린의 랩탑을 해킹하려다 반대로 역해킹 당한 거 말인가? 아니면 실수로 그의 머그잔을 깨트렸다가 형님께 혼난 거? 그것도 아니면 어린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인 척 멀린 머리에 물 준거? 자네도 참 유치하더군."

Q는 한번 더 욕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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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맥] 잘자요

Act 2014. 10. 5. 01:37

 맥은 어린 타자와 한 지붕 아래서 살기로 했다. 백퍼센트 그의 의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퍼센트 타자의 의견도 아니었다. 이건 맥 자신의 작은 위안이자 휴식이자 용서이자 참회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한 16살짜리 어린 아이와의 타협. 꽤나 비겁하다고 생각했지만 타자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잘 할 수 있을거야. 평범하게 지낼 수 있어. 적어도 이 집 안에서만이라도.

 톰은 총잡이와 한 지붕 아래서 살기로 했다. 백퍼센트 그의 의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퍼센트 총잡이의 의견도 아니었다. 16살인 자신과 26살의 총잡이. 처음에는 아저씨라고 부를까 했지만 그보다는 '형'이 더 좋았다. 조금 더 가족같은.. 아니, 그쪽이 조금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총잡이도 '형'이라는 호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톰은 '형'을 곧잘 따랐고 밥도 같이 먹고, 가끔은 장난도 치고, 간혹 밤을 새면서 놀다 잠들기도 했다. 이런 평범한 생활이 그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톰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둘은 제법 오랜시간동안 함께 살았다. 3년, 이제 4년. 맥은 어렸던 타자 덕분에 4년간 평범한 생활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일이 없는 날이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등 아주 짧은 시간들이지만. 그 짧은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맥에게 작지만 좋은 기억이 되었다.

맥은 요근래 악몽을 꾸는 빈도가 줄었다. 이것도 아마 타자의 덕분이 아닐까. 톰. 맥은 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싶었다. 뭐라도 사다줄까. 이제 스무살이지. 성인 된 기념으로 술이나 같이 할까. 아니지, 그 녀석은 술 안 좋아해. 새 배트라도 하나 장만해줄까. 맥은 문득 자신이 이런 평범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약간은 설레기도 하고, 약간은 위화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맥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고 상점으로 향했다. 배트, 배트가 좋겠어.

톰은 집으로 돌아온 형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스무살 기념이라니. 하지만 톰은 선물이 단지 '스무살을 기념'하는 의미만 담긴 것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이건 일종의 '감사'라는걸 알았다. 자신으로 인해 작은 위안을 얻은 그의 어설픈 감사. 톰은 어설픈 그의 행동이 좋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귀엽다'고 얘기하면 분명 그는 "어린게."하며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겠지. 톰은 분명 그에게 '귀엽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톰이 처음부터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은 이유와도 상관이 있었다. 톰은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기 싫었다. 그가 톰의 가족이 된다면 절대로 그를 좋아할 수 없을테니까. 톰은 그를 좋아한다. 맥을.

평범하게 선물을 주고, 평범하게 선물을 받으며 기뻐한다. 평범하게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TV를 보다가 19세가 붙은 채널이 나오면 급하게 돌린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걸 알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괜히 자신을 의식하는 맥을 보며 톰은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톰도 아직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건전하게 TV를 보다가 슬슬 졸리기 시작한 맥이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벌써 자요?

 - 어. 피곤하네.

 - 같이 씻어도 돼요?

 - 그러든지.

 - 농담이에요. 그러기엔 제가 너무 컸잖아요.

 - 넌 원래도 나보다 컸어.

 - 그래도요. 먼저 씻어요, 형.

톰은 계속 TV 채널을 돌렸다. 어느 채널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때우고자 여기저기 돌려볼 뿐. 톰은 시간을 재고 있었다. 20분? 30분? 맥은 나오지 않았다.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그리고 조용히 노크를 했다. 똑똑. "형?" 답이 없었다. 톰은 욕실 문을 열었다. 습기찬 욕실 안에서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와 미약하게 새액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따뜻한 물 속에서, 맥이 잠들어 있었다. 톰은 익숙한 듯 조심스레 맥을 깨웠다. 형, 일어나요. 방에서 자야죠.

 - 어.. 응..

맥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대충 몸을 닦았다. 그가 나중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몸에 있던 물기의 반은 톰의 수건에 의해 닦였을 것이다. 어쨌건 톰은 맥을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씻은 직후의 나른함. 맥의 온 몸에서 그런 기운이 퍼졌다. 톰은 자신도 곧 잠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다. 조금만 더. 형이 자는걸 보고 자야지.

 - 형, 누워요. 형 침대예요.

 - 그래..

 - 잘자요.

 - 응.. 고맙..다..

톰은 맥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머뭇거리다 다시 옆에 앉았다.

 - 자요?

형은 정말 잠들었을까. 톰이 맥에게 몇 마디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맥이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톰은 주저없이 맥에게 가볍에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 오늘은 키스만 할게요. 아직.. 많으니까.. 시간도, 기회도..


맥은 요근래 악몽을 꾸는 빈도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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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비티폴즈] 껍데기

Act 2014. 9. 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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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Avenge

Double-0-Seven 2014. 7. 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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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Act 2014. 7. 21. 18:37

 옷 위로 스치는 바람이 차다. 내려다본 아래에는 새카만 아스팔트 길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정경은 빨간 불빛을 날름거린다. 여기가 지옥일까.


 새벽 2시 반. 대부분의 상점과 집은 불이 꺼진지 오래다. 캄캄한 배경 위에 그려진 것이라곤 붉은 십자가나 도로를 질주하는 차의 헤드라이트 뿐이다. 큰 소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고요하지도 않은 곳. 창가에 턱을 괴고 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중심에 내가 서 있는걸까, 내가 중심에 선걸까. 나는 후자이기를 바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흐른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목록을 쭉 올려본다. Love the way you lie. 난 네가 거짓말 하는게 좋았어.

그래, 난 네가 거짓말 하는게 좋았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커다란 가시공이 되어 언젠가는 내게 굴러올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이 커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가시가 하나, 둘 늘어나는 동안에 너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는 네가 거짓말 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멈추지는 못했다. 나는 미뤄왔던거다. 계속 미루다 보면 너무 커져버린 공이 터지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공이 터지기 전 나를 향한 너의 심장이 먼저 터져버렸다. 네 심장은 이제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가시공은 나에게 굴러와 나를 짓눌러 갈기갈기 찢어놓고 피투성이가 된 내 몸을 집어먹었다. 나는 그 안에 갇혀서 철의 처녀 안에 강제로 떠밀려들어간 중세시대의 무고한 죄인을 떠올린다. 내가 뭘 잘못한걸까. 넌 왜 나를 여기에 집어넣고 갔을까.
노래가 끝났다.


 난 네가 저 아래서 나를 바라보고 있기를 바란다. 노래의 가사 처럼. 그 아래에 서서 내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를 바란다. 내가 다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이곳에서 떨어져 사라지기를 바란다. 저 아래 까만 아스팔트가 붉게 물들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저 바랄 뿐이다. 이어서 나오던 노래를 멈추고 이어폰을 뺀 뒤 자리에 누웠다.


 내일도 나는 새벽에 일어나 창가에서 턱을 괴고 있을 것이다. 네가 아래에서 날 보고 있길 바라며. 떨어지는 나를 보고 있길 바라며.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는데 그칠 것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거짓말을 한 너에게 소리치며 비난하고, 죽을만큼 괴로운 상처를 안겨줄 용기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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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12바퀴

Double-0-Seven 2014. 7. 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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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

Act 2014. 7. 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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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용

Double-0-Seven 2014. 7.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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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냥

Double-0-Seven 2014. 7. 3. 23:12

 MI6의 유능한 요원, 제임스 본드는 여느 때처럼 임무를 마치고 복귀신고를 한 뒤 Q브랜치에 들어왔어. 그리고 버릇처럼 Q를 찾았지. 그런데 한 손에 머그를 들고 쫑쫑쫑 걸어오는 무표정한 큐의 머리 위에 웬 앙증맞은 고양이 귀가 달려있잖아?

 "어..."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답니까?"

 "아니.. 그..."

본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 눈을 몇 번씩이나 비볐는데도 Q의 머리에 붙은 고양이 귀는 사라지질 않았고. 게다가 시선을 아래로 돌려보니 꼬리까지 살랑거리고 있어. 세상에, 본드는 자기가 지금 꿈을 꾸나 싶고 하다못해 혹시 임무 도중에 죽어버려서 저세상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품었어. 그도 그럴 것이, 본드 말고는 아무도 큐의 고양이 코스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렇게 본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Q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어. 그리고 브랜치를 나서기 전에 다른 요원을 붙잡고 자신이 제정신인지 확인했지.

 "자네, 혹시 Q 머리에 달린 저게 보이나?"

그랬더니 그 요원이 생긋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네, 잘 보이네요. 귀 말씀하시는 거죠? 귀엽지 않나요?"

이후에도 다른 요원 몇 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어. 하지만 열이면 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거나 오히려 귀여우니 보기에 좋지 않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본드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지본드는 이제 자기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 MI6 전체가 이상한 게 아닌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 이상한 바이러스라도 퍼진 걸까, 하고 말이야.

그렇게 혼란에 혼란이 겹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본드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어. 뒤를 돌아보니까 사복으로 갈아입은 Q가 본드를 빤히 쳐다보고 있잖아? 아까  '귀여운' 모습 그대로. 본드는 충동적으로 Q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과는 달리 열심히 살랑거리는 꼬리가 귀여웠기 때문일 거야. Q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봐준다는 듯이 본드의 손에 머리를 맡겼어.

이제 본드는 자신의 눈도, MI6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도 의심하지 않기로 했어. 딱 하나, 대체 오늘 Q가 뭘 잘못 먹은건지 궁금해졌지.



* *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드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Q의 플랫 안이었어. 거기다 Q가 떡하니 무릎베개를 하고 누워있었지.

 "내가 오늘 귀신에 홀린 건가?"

 "귀신이 아니라 저한테 홀리셨죠."

Q는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어. 그리고 아주 자연스레 본드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서 목에 팔을 둘렀지본드는 이런 대박 상황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싫지는 않았어. 이렇게 적극적인 Q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래도 본드는 자신이 나름 신사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손대지는 않기로 했어.

 "오늘이 내 생일인가 보군."

 "맞았어요. 이 눈치 없는 아저씨야."

그래. 오늘은 바로 본드의 생일이었던 거야. Q는 본인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본드에게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냈어. 사실 기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런 부끄러운 차림새를 하고 있으면 뭐라도 생각나지 않을까 기대했어. 결과는 전혀 아니었지만.

 "어떻게 자기 생일도 몰라요? 아침부터 이러고 있었는데 진짜 괜한 짓 했네!"

 "아침부터? 왜?"

 "언제 올질 알아야 말이죠."

 "괜한 짓은 아니야. 좋은데?"

 "참 솔직하시네요."

 "그게 내 매력이지."

능글맞게 씩 웃는 본드를 본 Q는 심통이 났어. 그래서 대뜸 본드의 뺨을 붙잡고 진한 키스를 선사했지. 이건 Q 나름대로 화낸 거야. 본드한테는 애교 수준이지만. 그러고 나서 Q는 당장에라도 자신을 안아 들고 침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본드를 무시하고, 묻지도 않은 고양이 코스튬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물론 본드는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 Q의 입을 막았다가는 Q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어. 그러니까 얌전히 입 꾹 다물고 들어줄 수밖에.

 "딱히, 굳이 요원님 생일 같은 걸 알고 싶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해 드릴까 하고. 알면서 모른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이게 작은 선물이면 큰 선물은 대체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되네."

 "하, 더이상 이런 선물은 안 만들 거니까 바라지 마세요. 절대."

 "잠깐, 만든다고? 설마 이거, 자네가 직접..."

 "그럼 제가 어딜 가서 이런 걸 삽니까? 쪽팔리게."

 "하긴, 이렇게 정교한 코스튬은 드물지."

 "움직이게 만든다고 고생 좀 했죠."

 "자네가 날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맘대로 생각하세요."

Q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본드는 슬슬 지루해졌어. Q가 밥상을 차려놓고 먹질 못하게 하잖아. 이제 참을 만큼 참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한 본드는 침대에 갈 필요도 없이 여기서 하기로 했어. 뭘 하는지는 매우 잘 알 거라고 생각해.

본드가 막 운을 떼려는 순간, Q가 본드의 무릎에서 내려왔어. 그리고 자기는 내일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 자러 가겠다는 거야. 이 어이없는 상황에 본드는 급빡침이 몰려왔지. 냅다 Q를 납치하듯 둘러업고 방으로 가서 침대에 휙 던져버렸지.

 "자자자잠깐, 저 내일 바쁘다니까요!"

 "어른을 놀리면 못써, Q. 시작한 당사자가 쏙 빠져나가면 어쩌나. 그건 안되지."

 "아, 진짜! 일찍 못 일어나면 내일 온종일 이거 달고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하루종일'?"



* * *



 사건은 Q가 고양이 코스튬을 만들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Q는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아무도 몰래 코스튬을 제작했어.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재능 낭비가 하고 싶었던 거야. 이왕 만드는 거 '이게 바로 내 능력이다!'라는걸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코스튬을 입을 때는 자유지만 벗을 때는 음성 인식이 필요하도록 만들었어. 물론 본인 음성을 넣을 예정이었지. 본드 생일 선물이니까 자신이 일단 먼저 쓰고, 나중에 본드한테 씌워서 못 벗는 거 놀려먹으려고.

그런데 만드는 도중에 본드한테서 전화가 왔어. 허겁지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는 양 전화를 받고, 한 손으로는 은밀하게 위대한 음성 인식 기능을 마저 완성 중이었지. 그 상태로 한참을 대화했어. 그리고 통화를 끊은 뒤에 완성된 자신의 역작을 뿌듯해 하며 목소리를 입력했지. 하지만 Q는 몰랐던 거야. 통화 도중에 이미 본드의 목소리가 입력돼버린걸.

 "원래는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다시 벗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 벗겨졌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그냥 이대로 분해해버릴 겁니다."

 "아까운데."

 "실컷 보셨잖아요."

본드는 못내 아쉬운 듯 Q의 꼬리를 만지작거렸어.

 "그러니까... 여기 내 목소리가 입력돼 있다는 건데."

 "오, 꿈도 꾸지 마세요. 뭔지 말 안 해줄 겁니다. 제 입으론 말 안 해요."

 "내가 지금부터 밤새 자네를 괴롭히면 자네는 내일 분해고 뭐고 포기해야겠군. 그렇지? 지금 모습 그대로 출근해야 할 테고?"

 "협박하지 마십쇼."

 "도와주려는 거야. 자네가 순순히 나랑 놀아주면 난 기꺼이 목소리를 바치지. 어때?"

 "누가 넘어갈 줄 알고요. 전 이거 분해해버리면 그만입니다."

 "호오, 넘어가게 될걸."

사실 Q에게 선택지는 없었어. 본드는 지금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밤새 Q랑 놀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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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발열

Double-0-Seven 2014. 7. 2. 23:12

 하루는, MI6의 쿼터마스터에게 심한 열이 났다. Q 말이다. 그게 감기 때문인지 다른 큰 병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곧장 의사에게 보여주었고 감기라는게 밝혀졌다. 하지만 '한창 젊은 나이인 쿼터마스터가 007에게 매일같이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 화병으로 쓰러졌다.'라고 와전된 이야기는 MI6 내 실시간 가십거리이자 핫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Q의 발열 꼭 감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찔리는 구석이 아주 많은 007, 제임스 본드는 제법 묵직한 죄책감을 느꼈고 결국 Q의 병간호를 자처했다. 환자 당사자가 그다지 싫은 티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M은 흔쾌히 이틀간의 짧은 휴가를 내주었다.


 환자를 싣고, 달려서, 차는 플랫 앞에 도착했다.

본드는 오는 도중에 목적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자신의 플랫으로 갈지, Q의 플랫으로 갈지. 그러다 문득 자신의 플랫은 청소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임무 때문에 장장 2주 동안 드나들지 못했다- 환자에게 먼지 쌓인 환경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본드는 망설임 없이 Q의 플랫으로 핸들을 틀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본드는 왜 자신의 플랫만 오랫동안 비웠다고 생각한 걸까. 먼지투성이 상태인 건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Q는 한숨을 푹 내쉬는 본드에게 도대체 뭘 기대한 거냐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리곤 비틀거리며 방으로 향했다. 저런 상태인데 어떻게 제 발로 걸을 생각을 하지. 본드는 그 정신력에 감탄하면서도 재빨리 Q를 부축했다. Q는 부축을 받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비켜줄 본드가 아니었다.

 Q는 내키지 않았던 본드의 도움으로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장 본드에게는 때아닌 혼란이 찾아왔다. 본드는 지금까지 -직업상- 누군가를 해치는 쪽이었다. 덕분에 간호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받는 거면 모를까. 그래서 뭐부터 해야 좋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드가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행동이나 말이 없자, Q는 조금 자려고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요원님. 물수건 좀 얹어주실래요? 수건은 욕실에, 욕실은.."

 "알아서 찾아보지."

본드의 어설픈 모습을 처음 보는 Q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모니터에서 보던 본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단 한발의 총알로 표적을 맞추는 사람이었는데. 겨우 물수건 하나 때문에 헤매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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