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맥] 잘자요

Act 2014. 10. 5. 01:37

 맥은 어린 타자와 한 지붕 아래서 살기로 했다. 백퍼센트 그의 의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퍼센트 타자의 의견도 아니었다. 이건 맥 자신의 작은 위안이자 휴식이자 용서이자 참회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한 16살짜리 어린 아이와의 타협. 꽤나 비겁하다고 생각했지만 타자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잘 할 수 있을거야. 평범하게 지낼 수 있어. 적어도 이 집 안에서만이라도.

 톰은 총잡이와 한 지붕 아래서 살기로 했다. 백퍼센트 그의 의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퍼센트 총잡이의 의견도 아니었다. 16살인 자신과 26살의 총잡이. 처음에는 아저씨라고 부를까 했지만 그보다는 '형'이 더 좋았다. 조금 더 가족같은.. 아니, 그쪽이 조금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총잡이도 '형'이라는 호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톰은 '형'을 곧잘 따랐고 밥도 같이 먹고, 가끔은 장난도 치고, 간혹 밤을 새면서 놀다 잠들기도 했다. 이런 평범한 생활이 그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톰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둘은 제법 오랜시간동안 함께 살았다. 3년, 이제 4년. 맥은 어렸던 타자 덕분에 4년간 평범한 생활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일이 없는 날이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등 아주 짧은 시간들이지만. 그 짧은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맥에게 작지만 좋은 기억이 되었다.

맥은 요근래 악몽을 꾸는 빈도가 줄었다. 이것도 아마 타자의 덕분이 아닐까. 톰. 맥은 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싶었다. 뭐라도 사다줄까. 이제 스무살이지. 성인 된 기념으로 술이나 같이 할까. 아니지, 그 녀석은 술 안 좋아해. 새 배트라도 하나 장만해줄까. 맥은 문득 자신이 이런 평범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약간은 설레기도 하고, 약간은 위화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맥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고 상점으로 향했다. 배트, 배트가 좋겠어.

톰은 집으로 돌아온 형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스무살 기념이라니. 하지만 톰은 선물이 단지 '스무살을 기념'하는 의미만 담긴 것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이건 일종의 '감사'라는걸 알았다. 자신으로 인해 작은 위안을 얻은 그의 어설픈 감사. 톰은 어설픈 그의 행동이 좋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귀엽다'고 얘기하면 분명 그는 "어린게."하며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겠지. 톰은 분명 그에게 '귀엽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톰이 처음부터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은 이유와도 상관이 있었다. 톰은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기 싫었다. 그가 톰의 가족이 된다면 절대로 그를 좋아할 수 없을테니까. 톰은 그를 좋아한다. 맥을.

평범하게 선물을 주고, 평범하게 선물을 받으며 기뻐한다. 평범하게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TV를 보다가 19세가 붙은 채널이 나오면 급하게 돌린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걸 알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괜히 자신을 의식하는 맥을 보며 톰은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톰도 아직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건전하게 TV를 보다가 슬슬 졸리기 시작한 맥이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벌써 자요?

 - 어. 피곤하네.

 - 같이 씻어도 돼요?

 - 그러든지.

 - 농담이에요. 그러기엔 제가 너무 컸잖아요.

 - 넌 원래도 나보다 컸어.

 - 그래도요. 먼저 씻어요, 형.

톰은 계속 TV 채널을 돌렸다. 어느 채널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때우고자 여기저기 돌려볼 뿐. 톰은 시간을 재고 있었다. 20분? 30분? 맥은 나오지 않았다.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그리고 조용히 노크를 했다. 똑똑. "형?" 답이 없었다. 톰은 욕실 문을 열었다. 습기찬 욕실 안에서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와 미약하게 새액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따뜻한 물 속에서, 맥이 잠들어 있었다. 톰은 익숙한 듯 조심스레 맥을 깨웠다. 형, 일어나요. 방에서 자야죠.

 - 어.. 응..

맥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대충 몸을 닦았다. 그가 나중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몸에 있던 물기의 반은 톰의 수건에 의해 닦였을 것이다. 어쨌건 톰은 맥을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씻은 직후의 나른함. 맥의 온 몸에서 그런 기운이 퍼졌다. 톰은 자신도 곧 잠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다. 조금만 더. 형이 자는걸 보고 자야지.

 - 형, 누워요. 형 침대예요.

 - 그래..

 - 잘자요.

 - 응.. 고맙..다..

톰은 맥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머뭇거리다 다시 옆에 앉았다.

 - 자요?

형은 정말 잠들었을까. 톰이 맥에게 몇 마디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맥이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톰은 주저없이 맥에게 가볍에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 오늘은 키스만 할게요. 아직.. 많으니까.. 시간도, 기회도..


맥은 요근래 악몽을 꾸는 빈도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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