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장갑

Double-0-Seven 2013. 11. 9. 00:55

* 2013년 10월 트위터




 Q가 장갑을 본부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건 별생각 없이 밖으로 빼놓은 손가락이 얼어서 뻣뻣해진 느낌이 들 때쯤이었다.




Gloves

[스카이폴] 00Q :: 13 11 08




 올해 겨울 이래로 내리는 '첫눈'이 발단이었다.

한두 살 먹은 애는 아니지만 백발노인들도 설레는 게 흰 눈 아닌가. 들뜬 마음으로 퇴근하고 한껏 기대감에 차서 손으로 눈송이를 받는 것도 잠시. 붉게 얼어버린 손은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주머니에 갇혔다. 하필 이때 도착한 문자는 Q를 매우 짜증 나게 만들었다.

 - Q, Where r u?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자판을 치자니 추운 것은 둘째치고 난무하는 오타에 지웠다 썼다를 두세 번 반복하던 Q는 결국 답장하기를 그만두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은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한건지 작은 소리로 변명을 중얼거렸다.

 "굳이 할 이유는 없으니까."


 눈이 내리는 길거리는 평소보다 배로 조용해서 낯선 기분이 들었다. 분명 지나가는 차들과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한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고요한 기분이 드는건지, Q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소음들 보다 '들리지도 않는 눈 내리는 소리'가 더욱 큰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눈의 소리는 마치 귀마개처럼 다른 소리들을 막아버렸다. 그러던 중 그 고요함 사이의 어디에선가 익숙한 소리가 하나 들렸다.

 "답장정도는 해줄 수 있잖나."


 어떻게 찾아온거지. 잠시 의문을 품던 Q는 이런 생각은 해 봐야 별 소득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본드에게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손이 이 꼴이라서요. 굳이 답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고. 혹시 중요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본드는 Q의 손을 보더니 혀를 쯧쯧 차며 인상을 썼다.

 "나야말로 자네한테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지. 웬일로 일찍 퇴근했다기에."

 "저라고 꼭 정시퇴근 해야하나요 뭐. 애당초 정시퇴근이라는게 없지만."

 "그래서, 일찍 나온 사유가?"

 "몇 년만에 눈 좀 즐겨보려구요."

 "그리 말하니 M이 보내주던가?"

 "아뇨. 꾀병 좀 부렸죠."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 본드를 앞에 둔 Q는 덤덤하게 본드를 바라봤다.

 "뭐.. 그럼 큰 용건은 없으신거네요?"

 "그렇지. 자네 손 좀 줘보게."

 "손이요?"

Q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손을 내밀자 본드는 기다렸다는 듯 덥썩 그 손을 잡아 자신의 손에 포갰다. 뭐하는 건지 황당한 눈빛을 하던 Q는 찬 손이 녹아가는 따스한 느낌에 아주 잠깐만, 본드에게 손을 맡기기로 했다.

 "따듯하네요."

 "난 열이 많은 편이거든."

 "겨울엔 좋으시겠어요."

 "유용하지.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Q의 손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움직이자 둘은 발걸음을 서둘러 플랫으로 들어왔다. 어쨌든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무언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Q는 플랫에 들어오자마자 물을 끓였다. 몇 분 뒤, 본드는 Q 나름의 '성의'인 커피를 한 모금 미심쩍게 마시고는 곧장 인상을 찡그렸다.

 "쓰구만."

 "원래 달게 안 마셔서요."

 "난 술이 좋은데."

 "전 커피가 좋아요."

 "보통은 손님 입맛에 맞추지."

 "요원님은 손님으로 안 치죠."

한참 커피를 홀짝이던 본드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있던 장갑을 꺼내 Q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주니까 받기는 한 Q는 본드가 준 것의 정체를 확인하곤 커피 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이거.. 제 장갑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왜 이제서야 저한테 주시는 건지 알고 싶네요."

본드는 능청스레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삼켰다.

 "덕분에 손도 잡아보고 좋지 않나?"

 "아주 계획적이시네요."

 "그런 소리 자주 듣네."

 "칭찬 아닙니다."

 "나도 알아. 어쨌든 나쁘진 않았잖나?"

싱글싱글 웃는 본드를 지긋이 보던 Q도 커피를 한번 홀짝이고 '뭐, 그렇긴 했죠.'라고 대답하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브랜치로 들어오는 Q는 맨손이었다. 그 얼어붙은 손을 본 본드는 한숨을 푹 쉬며 Q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또 까먹고 왔나? 젊어서 벌써 그러면 안되지."

Q는 본드의 손을 꼬옥 잡으며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겨울동안만 신세 좀 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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