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휘프노스

Double-0-Seven 2013. 11. 18. 01:18



 Q는 본부로 출근한지 4일만에 비로소 플랫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나흘동안 Q를 괴롭힌, 끝나지 않는 야근에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서 '방으로 가야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푹신한 침대에 발 뻗고 편해 누워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피곤해.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Q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꺼풀이 닫히자 마자 누군가가 Q를 아주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는데, 자신은 멀쩡하게 어딘가에 서 있었다. 땅을 밟고 있는 것 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닥에 손을 대 보았다. 바닥은 흐르는 액체인건지 강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의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물장구 치듯 허공에 튕기자 수없이 많은 동그란 방울들이 공중에 별처럼 흩뿌려졌다. 동시에 사방은 새카매졌고, 이제는 우주에 와 있는 듯 했다. 자리를 잡은 방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별처럼 반짝거리며 빛나지도 않았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Q는 방울들을 하나둘 손 안에 모았다. 의외로 찰흙처럼 말랑거리길래 한번 꾹꾹 뭉쳐보았더니 금새 한 덩어리가 되었다.

 - 좋아. 이걸로 뭘 하면 되는거지?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네가 잘 할 수 있는걸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말한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우주 안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Q 자신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 Q는 알고 있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공간이 현실에 존재할 리 없다는걸. 그러니 이건 꿈이 틀림없다고. 현실의 자신은 나흘의 야근에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으니 더더욱 꿈일 수 밖에 없었다.

 - 내가 잘 만드는건 이걸로 만들 수 없어.

이번에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첫번째 말과는 달리 대답을 기대하고 해본 혼잣말이었다. Q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꿈이야. 생각을 해. 네 마음대로. 뭐든지.' 생각으로 물체를 만들라니.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Q는 꿈 속에서, 머리속으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꿈이지만 Q가 쿼터마스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Q는 실현 불가능한 무기를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 영화에서나 보았던 레이저검이라든가, 외계인들이 쏘는 광선총이라든가. 하지만 꿈 속에서 만들 무기치고는 별로 독특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 뭐든 만들 수 있는데. 고작 광선총은 너무하지.

그렇다면?

 - 창조주가 되어볼까.

Q는 '인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꿈 속에서까지 직업에 구애받을 이유는 없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걸 해봐.' 해야하는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Q는 인간을 만들고 싶었다.

 - 어떤 모습이 좋을까? 유아? 청소년? 성인? 여성? 남성? 영국인? 아니면 다른 나라?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던 Q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작은 감탄사를 내뱉은 Q는 멈추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구체화 해나갔다.

 - 그 사람, 키가 어느정도였지? 나보다 조금 더 크지, 아마. 눈 색은? 밝은 파란색. 머리칼은 얼마나 길었지? 아니, 길다기보다는 짧은 편이지. 무슨 옷이 어울렸더라. 역시 정장. 그게 아니면 안되지. 어디보자. 주름도 좀 있고, 정장에 가리겠지만 어쨌든 근육질이었어.

거의 비슷한 형상이 만들어지자 Q는 다시 눈을 떴다.


 - Q, 일어나게.

 Q의 바로 눈 앞에 자신이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던 '인간'이 나타났다. 정장을 입은 인간은 파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세상에. 성공했잖아?

 - 무슨 소린가?

꿈 속에서 미처 이름까지는 불러보지 못한 자신의 창조물. Q의 파트너, 007, 제임스 본드.

 - 아.. 아닙니다. 꿈을 좀 꿨어요.

 - 잠꼬대 그만하고 일어나게. 전화도 안받고.

 - 요원님 전화까지 하셨어요?

 - 자네 핸드폰 열어봐. 부재중 몇통인가.

 - 깊게 자느라 못 들었나 보네요.


 Q는 본드의 차 안에서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본드의 말로는 하루를 꼬박 잤다고 하지만 여전히 피곤한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 Q를 흘깃 쳐다본 본드는 다시 시선을 차도에 고정했다.

 - 무슨 꿈을 꿨나?

 -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냥.. 뭘 좀 만들어봤어요.

 - 뭘?

 - 뭐든지요.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본드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하하.'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 자넨 꿈 속에서도 무기를 만들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

 - 처음엔 그러려고 했죠. 여기선 아직 만들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광선총이라든가.

 - 자네다워.

 - 그런데 재미 없더라고요. 만들어봐야 쓸데가 없으니까요. 거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이야기 도중 본부에 도착한 Q와 본드는 차에서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Q의 꿈에대한 대화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 그래서, 자넨 결국 뭘 만들었나?

 - 제가 앞으로 만들 무기를 쓸 사람이요. 사람을 만든 뒤에 무기를 쥐어주면 그걸 쓰겠죠.

 - 꽉막힌 발상이구만. 어떤 사람을 만들었지?

 - 그게, 결국 못 만들었습니다. 마침 깨버렸거든요.

마침내 브랜치에 도착한 Q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본드 역시 임무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Q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동안 왜 하필 그 때 깬건지 생각해보았다. 분명 깊이 잠들었을텐데 신기한 타이밍에 현실에서 눈이 떠진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어느순간 어렴풋이 해답이 떠올랐다.

 - 요원님, 들리세요?

 - 아직 임무 시작 전인데. 무슨 일이야?

 - 별건 아니고요, 제가 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본게 있는데요.

 - 그래? 한번 들어볼까.

 -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건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고들 하죠.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꿈에서도 못하게끔 절 그 때 깨워버린거 아닐까요.

 - 그럼 자네가 꿈에서 들은 목소리는 '신'인가?

 - 그럴지도요. 미신 같은걸 믿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나쁘진 않네요.

 - 다음에 또 똑같은 꿈을 꾸게되면 한번 더 해보게. 그럼 확실히 알 수 있겠지.

 - 글쎄요, 위험한 짓을 했는데 신께서 절 다시 초대해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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