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냥

Double-0-Seven 2014. 7. 3. 23:12

 MI6의 유능한 요원, 제임스 본드는 여느 때처럼 임무를 마치고 복귀신고를 한 뒤 Q브랜치에 들어왔어. 그리고 버릇처럼 Q를 찾았지. 그런데 한 손에 머그를 들고 쫑쫑쫑 걸어오는 무표정한 큐의 머리 위에 웬 앙증맞은 고양이 귀가 달려있잖아?

 "어..."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답니까?"

 "아니.. 그..."

본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 눈을 몇 번씩이나 비볐는데도 Q의 머리에 붙은 고양이 귀는 사라지질 않았고. 게다가 시선을 아래로 돌려보니 꼬리까지 살랑거리고 있어. 세상에, 본드는 자기가 지금 꿈을 꾸나 싶고 하다못해 혹시 임무 도중에 죽어버려서 저세상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품었어. 그도 그럴 것이, 본드 말고는 아무도 큐의 고양이 코스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렇게 본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Q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어. 그리고 브랜치를 나서기 전에 다른 요원을 붙잡고 자신이 제정신인지 확인했지.

 "자네, 혹시 Q 머리에 달린 저게 보이나?"

그랬더니 그 요원이 생긋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네, 잘 보이네요. 귀 말씀하시는 거죠? 귀엽지 않나요?"

이후에도 다른 요원 몇 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어. 하지만 열이면 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거나 오히려 귀여우니 보기에 좋지 않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본드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지본드는 이제 자기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 MI6 전체가 이상한 게 아닌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 이상한 바이러스라도 퍼진 걸까, 하고 말이야.

그렇게 혼란에 혼란이 겹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본드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어. 뒤를 돌아보니까 사복으로 갈아입은 Q가 본드를 빤히 쳐다보고 있잖아? 아까  '귀여운' 모습 그대로. 본드는 충동적으로 Q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과는 달리 열심히 살랑거리는 꼬리가 귀여웠기 때문일 거야. Q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봐준다는 듯이 본드의 손에 머리를 맡겼어.

이제 본드는 자신의 눈도, MI6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도 의심하지 않기로 했어. 딱 하나, 대체 오늘 Q가 뭘 잘못 먹은건지 궁금해졌지.



* *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드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Q의 플랫 안이었어. 거기다 Q가 떡하니 무릎베개를 하고 누워있었지.

 "내가 오늘 귀신에 홀린 건가?"

 "귀신이 아니라 저한테 홀리셨죠."

Q는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어. 그리고 아주 자연스레 본드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서 목에 팔을 둘렀지본드는 이런 대박 상황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싫지는 않았어. 이렇게 적극적인 Q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래도 본드는 자신이 나름 신사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손대지는 않기로 했어.

 "오늘이 내 생일인가 보군."

 "맞았어요. 이 눈치 없는 아저씨야."

그래. 오늘은 바로 본드의 생일이었던 거야. Q는 본인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본드에게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냈어. 사실 기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런 부끄러운 차림새를 하고 있으면 뭐라도 생각나지 않을까 기대했어. 결과는 전혀 아니었지만.

 "어떻게 자기 생일도 몰라요? 아침부터 이러고 있었는데 진짜 괜한 짓 했네!"

 "아침부터? 왜?"

 "언제 올질 알아야 말이죠."

 "괜한 짓은 아니야. 좋은데?"

 "참 솔직하시네요."

 "그게 내 매력이지."

능글맞게 씩 웃는 본드를 본 Q는 심통이 났어. 그래서 대뜸 본드의 뺨을 붙잡고 진한 키스를 선사했지. 이건 Q 나름대로 화낸 거야. 본드한테는 애교 수준이지만. 그러고 나서 Q는 당장에라도 자신을 안아 들고 침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본드를 무시하고, 묻지도 않은 고양이 코스튬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물론 본드는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 Q의 입을 막았다가는 Q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어. 그러니까 얌전히 입 꾹 다물고 들어줄 수밖에.

 "딱히, 굳이 요원님 생일 같은 걸 알고 싶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해 드릴까 하고. 알면서 모른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이게 작은 선물이면 큰 선물은 대체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되네."

 "하, 더이상 이런 선물은 안 만들 거니까 바라지 마세요. 절대."

 "잠깐, 만든다고? 설마 이거, 자네가 직접..."

 "그럼 제가 어딜 가서 이런 걸 삽니까? 쪽팔리게."

 "하긴, 이렇게 정교한 코스튬은 드물지."

 "움직이게 만든다고 고생 좀 했죠."

 "자네가 날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맘대로 생각하세요."

Q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본드는 슬슬 지루해졌어. Q가 밥상을 차려놓고 먹질 못하게 하잖아. 이제 참을 만큼 참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한 본드는 침대에 갈 필요도 없이 여기서 하기로 했어. 뭘 하는지는 매우 잘 알 거라고 생각해.

본드가 막 운을 떼려는 순간, Q가 본드의 무릎에서 내려왔어. 그리고 자기는 내일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 자러 가겠다는 거야. 이 어이없는 상황에 본드는 급빡침이 몰려왔지. 냅다 Q를 납치하듯 둘러업고 방으로 가서 침대에 휙 던져버렸지.

 "자자자잠깐, 저 내일 바쁘다니까요!"

 "어른을 놀리면 못써, Q. 시작한 당사자가 쏙 빠져나가면 어쩌나. 그건 안되지."

 "아, 진짜! 일찍 못 일어나면 내일 온종일 이거 달고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하루종일'?"



* * *



 사건은 Q가 고양이 코스튬을 만들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Q는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아무도 몰래 코스튬을 제작했어.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재능 낭비가 하고 싶었던 거야. 이왕 만드는 거 '이게 바로 내 능력이다!'라는걸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코스튬을 입을 때는 자유지만 벗을 때는 음성 인식이 필요하도록 만들었어. 물론 본인 음성을 넣을 예정이었지. 본드 생일 선물이니까 자신이 일단 먼저 쓰고, 나중에 본드한테 씌워서 못 벗는 거 놀려먹으려고.

그런데 만드는 도중에 본드한테서 전화가 왔어. 허겁지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는 양 전화를 받고, 한 손으로는 은밀하게 위대한 음성 인식 기능을 마저 완성 중이었지. 그 상태로 한참을 대화했어. 그리고 통화를 끊은 뒤에 완성된 자신의 역작을 뿌듯해 하며 목소리를 입력했지. 하지만 Q는 몰랐던 거야. 통화 도중에 이미 본드의 목소리가 입력돼버린걸.

 "원래는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다시 벗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 벗겨졌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그냥 이대로 분해해버릴 겁니다."

 "아까운데."

 "실컷 보셨잖아요."

본드는 못내 아쉬운 듯 Q의 꼬리를 만지작거렸어.

 "그러니까... 여기 내 목소리가 입력돼 있다는 건데."

 "오, 꿈도 꾸지 마세요. 뭔지 말 안 해줄 겁니다. 제 입으론 말 안 해요."

 "내가 지금부터 밤새 자네를 괴롭히면 자네는 내일 분해고 뭐고 포기해야겠군. 그렇지? 지금 모습 그대로 출근해야 할 테고?"

 "협박하지 마십쇼."

 "도와주려는 거야. 자네가 순순히 나랑 놀아주면 난 기꺼이 목소리를 바치지. 어때?"

 "누가 넘어갈 줄 알고요. 전 이거 분해해버리면 그만입니다."

 "호오, 넘어가게 될걸."

사실 Q에게 선택지는 없었어. 본드는 지금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밤새 Q랑 놀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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